김우중 별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별세 숙환

 

 

김우중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재벌 중 한명인데요.

12월 9일 11시 50분쯤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우중 전 회장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고 전했습니다.


김우중 회장 고인의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입니다.

발인은 모레(12일)이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진행됩니다.

12월 9일 김우중 회장의 별세 소식 놀랐는데요.

 

 

김우중 회장은 20세기 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으로 수상을 받고,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을 출간하면서 유명하였었습니다.



김우중 회장 별세 소식 몇시간 전이었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건강 악화로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귀국 후 아주대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다가 올 하반기에 입원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김우중 회장은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경기중, 경기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김우중 회장의 증세는 알츠하이머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김우중 회장은 2017년 3월 서울에서 열린 '대우창업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행보가 공개된 적이 없었습니다.


 

 


기억력이 서서히 감퇴하는 알츠하이머입니다.

1월 중국에서 있었던 출판 간담회인데요.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도 김우중 회장이

해외에 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김우중 회장 건강이 좋지 않으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김우중 회장 근황을 밝힌 바 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대우실업이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이런 창업 이후 유창한 영어 실력, 

독특한 자금동원 능력,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맥과 

경기고 인맥 등을 잘 활용해 창업 5년만에 100만 달러 수출을 기록했습니다,



김우중 회장이 설립한 대우그룹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말까지 

재계 서열 2위를 기록한 대규모기업집단이었습니다.






1999년 부도를 맞고 해체되었죠.
특히 중동붐으로 엄청난 대박을 터트려서 

10여년만에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현대그룹, 삼성그룹, 럭키그룹에 이은 4대 재벌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김우중 회장 정말 대단하죠.


  

 


김우중 회장의 별세 소식에 따라 숙환 뜻도 화제인데요.

오랜동안 자리에 누워 앓던 병으로 오랜 중병이 사망원이 될 수 있을 때 사용합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지병'이 있지만 쓰임새는 다른데요.

지병은 오랫동안 잘 낫지 아니하는 병을 말합니다.



 


김우중 회장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만 30세인 1967년 대우를 설립한 후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의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 김우중 회장입니다.


 김우중 회장은 대우전자와 대우자동차 등을 인수하며 더욱 몸집을 불리게 됩니다.

 

 김우중 회장은 특히 자동차 회사 인수 후에는 

독일 기술 제휴로 잔고장이 적은 MAN 엔진을 개발해 

우리나라 운수업계의 골칫거리였던 

차량 정비관련 비용을 크게 줄이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김우중


김우중 회장은 이후에 세계경영을 주창하며 전 세계로 사업을 확장했는데요.

대우의 수입차 생산 거점기지였던 폴란드는 수도 바르샤바에는 '세종대왕 고등학교'까지 있다고 합니다.

 

김우중 회장은 대한민국 원조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평가를 받는데요.

 시작 자체를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집안 배경, 인맥, 언플을 적극 활용하여 

샐러리맨의 신화를 썼기 때문입니다.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불렸던 김우중 회장입니다.

 

 

 

김우중 회장은 20세기 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으로 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책을 쓰며

새로운 길을 향해 용기 있게 개척해 나갈 것을 권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개정판도 나왔었어요.

대우의 수출규모는 한국 총 수출액의 약 10%에 달했었죠.

김우중 회장 신화 대단합니다.

 

 



김우중 회장은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설립하기도 했구요.

에콰도르에 이어, 수단, 리비아 등 아프리카 시장진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는 개인 재산 전액을 추가로 출연해 기초학문연구지원사업을 시행했던 김우중 회장입니다. 



성과를 담은 대우학술총서와 대우고전총서는 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국제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수상했습니다.


아까 언급한 김우중 회장의 에세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인데요.

6개월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였었다네요.


 



김우중 회장은 초반에 기술은 사오면 된다며 연구개발을 등한시 했었는데요.

 

이후에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깨달아 연구개발을 진행했는데, 

타 경쟁기업들도 비슷한 제품을 내게 되고, 

1997년 IMF로 인해서 대우의 경영 스타일이 발목을 잡게 됩니다.

 

 

 




하지만 오히려 김우중 회장은 쌍용자동차를 추가로 인수하고, 

대우 상표의 인지도를 높이는 적극적인 경영을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김우중 회장은 팔리지 않는 제품을 해외 법인으로 밀어내어 

수출 실적으로 잡아 구조조정을 소홀히 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위와 같은 방법으로 몸집 불리기에 성공했지만 

대우의 내실은 부실해졌고, 이후 대우 자동차 부도가 나면서 청산되기도 했습니다.


서서히 그룹 해체 이후 김우중 회장은 사기 대출 혐의로 수사가 진행되며, 

여러 나라로 장기 도피하고 심지어 해외 도피자 명의로 공개수배를 받기도 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자문위원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김우중 회장입니다.

외환위기 와중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기도 했었죠.



김우중 회장은 2010년부터 마지막 봉사라 여기며 

GYBM양성사업에 매진하였는데요.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에 

1,000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김우중 회장의 이점은 정말 좋아요.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정말 파란만장했었죠.

 

김우중


1999년 해체 직전, 대우는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

당시 자산총액은 76조7,000억원, 매출은 91조원(1998년)이었습니다.

김우중 회장 관련 정보였습니다.

 

 

 

김우중 회장의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김우중 회장 사진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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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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